▶'채상병 특검법' 사례로 보는 국회의장 직권상정
"윤석열이나 다 똑같은 놈들, 진짜 개xx들이다"
"국민적 합의로 채상병특검법과 이태원참사특별법, 김건희 특검법은 하게 돼있다. 이것을 의장이 사회를, 직권상정을 하지 않고 해외에 나간다"
"채상병 특검은 여야 원내대표가 의사일정 합의가 안 되면 김진표 의장이 직권상정해서 가결 선포하고 가시는 것이 김 의장의 명예제대"
박지원은 5.1일 생방송 인터뷰에서 "김진표는 개xx"라고 했다. 발언 앞뒤를 보면, 박지원이 "개xx"라고 한 이유는 채상병 특검법 등에 대해 김진표 의장이 직권상정을 안하기 때문이다.
▶「국회법」에 국회의장 '직권상정'이 있을까?
없다. 국회법에는 '직권상정'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그럼 박지원이 이야기하는 의장 직권상정은 무엇일까?
국회법 제85조의 심사기간 지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보통 이 조항을 근거로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사실 이 조항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열어준 조항이 아니라, 직권상정을 못하도록 막은 조항이다. 소위 '국회 선진화법'이라 부르는, 2012년 5.2일 본회의에서 통과된 「국회법」이다. 여기에서 의장이 직권상정할 수 있는 경우를 천재지변, 국가비상사태, 교섭단체 대표 합의사항만 가능하게 했다.(개정 이전에는 이런 제한이 없이 폭넓게 가능했다) 노란색 부분처럼 '협의'도 '합의'로 바꾸었는데, 국회에서 협의와 합의는 천지차이다. 합의는 말그대로 합의고, 협의는 그냥 말 한마디만 나눠도 협의다. 의장 직권상정으로 국회가 파행되는 일이 많다보니, 원천적으로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금지한 조항이라고 보는게 맞다. 그런데 이걸 박지원이 모르고 하는 말이었을까?
그럴리 없다. 위 「국회법」이 통과된 2012년 5.2일 본회의 회의록을 보니, 당시 박지원 의원도 이 법안 찬성자 명단에 나와있다. 모를리는 없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없다면 할 말이 없지만...
▶박지원의 "개xx" 사례로 보는 「안건 신속처리 제도」
그렇다면 "김진표가 채상병 특검법 처리를 안하다."는 박지원의 논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건 국회의 「안건 신속처리 제도」를 좀 알아야 하는 문제다. 국회에는 의원들이 죽기살기로 싸우는 법안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위원회에서 한 발짝도 못나가고 주구장창 위원회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장기 미처리 법안을 일정 기간 경과 후, 자동으로 다음 심사단계로 밀어내는 것을 '안건 신속처리'라고 한다. 패스트 트랙(Fast Track)이라고도 부른다. 이 제도도 2012년 5월, 국회 선진화법의 산물이다. (법사위 소관 안건의 경우)절차는 대략 다음과 같다.
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 요구(재적의원 과반 이상)→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 표결(무기명, 재적의원 3/5 이상 찬성)→위원회 심사기간 지정(180일)→심사기간 종료 다음날 본회의 부의→60일 이내 본회의 안건 상정→60일 경과 시 이후 첫 본회의 자동 상정
이 절차를 「채상병 특검법」에 적용해 보자
√ 발의: 2023년 9.7일(박주민 등 24인)
√ 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 요청: 2023년 9.21일(송기헌·이은주·용혜인·강성희 등 181인)
√ 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 표결: 2023년 10.6일 본회의 → 가결(찬성 182표)
√ 위원회(법사위) 심사기간 지정: 180일(2024년 4.2일 까지)
√ 본회의 자동 부의: 2024년 4.3일
√ 본회의 상정 기한: 2024년 6.1일(21대 국회는 2024년 5.29일 임기만료)
이렇게 「채상병 특검법」은 4.3일자로 본회의에 자동부의되어 본회의가 열리기만 하면 상정될 수 있는 상태였다. '부의'와 '상정'의 개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부의: 위원회 심의를 모두 마치고 본회의에 상정하여 의결할 수 있는 상태
상정: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을 의사일정에 올려 의결하도록 하는 행위
▶특검법 상정은 '의장 직권' 아니라, '의사일정 변경'으로
이런 상태에서 4.10일 총선이 있었고, 결과는 아다시피 야당 압승, 우여곡절 끝에 5월 임시국회에서 본회의는 5월 2일에 열기로 합의되었다. 그런데, 민주당 입장에서는 2일 본회의에 「채상병 특검법」을 상정해서 처리해야 하는데, 이게 또 간단치 않다. 여당과의 의사일정 합의는 100% 불가능하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하는 것도 국회법상 불가능하다. 이럴 때 동원하는 방법이 '의사일정 변경'이다.
[국회법] 제77조(의사일정의 변경) 의원 20명 이상의 연서에 의한 동의(動議)로 본회의 의결이 있거나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의장은 회기 전체 의사일정의 일부를 변경하거나 당일 의사일정의 안건 추가 및 순서 변경을 할 수 있다.
일단 본회의가 열리면, 민주당에서 「채상병 특검법안」을 상정하도록 의사일정 변경을 요청 하고, 의장이 이를 받아들여 안건 상정을 하면 의결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자인 의장이 수락할 것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 이건 의장의 재량이다.(국회의장의 거의 유일한 선택권이고, 직권상정과는 다르다) 김진표 의장은 본회의 전날 까지도 안건 상정을 위해서는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는 원칙적인 입장이었다. 중립 의무가 있는 의장☞자세히 보기☜으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다.
▶막말국회, 이제 제발 좀 그만
이 타이밍에 박지원의 "김진표는 개xx" 인터뷰가 나온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안건상정을 위해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는 김진표 의장의 '원칙론'에 대한 반응이다. 둘째는, 김진표 의장이 의사일정 변경 요청을 거부하여 「채상병 특검법」을 상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을 전제로 한 반응이다. 둘 다, 박지원의 '경륜'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채상병 특검법」은 상정되고 의결됐다. 박지원의 "개xx" 발언은 그가 국회법의 직권상정이나, 안건 신속처리 제도, 의사일정 변경 절차 등을 모르고 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방송인줄 모르고 했다는 말도 별로 믿겨지지 않는다. 국회의장 자리를 노크하려는 의도적 실언이라는 설도 있지만, 그건 「입법평론」의 관심영역이 아니다. 아무튼 채상병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이제 정말 국회의원들의 막말은 퇴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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