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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쟁점

'청부입법'은 왜, 어떻게 만들어질까?

by 레몬컴퍼니 2024. 4. 28.

「청부입법」은 공식적인 법률용어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정부와 의원 모두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야 할 법률안을, 정부가 의원에게 부탁하여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발의하게 하는 편법적인 관행을 청부입법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정부의뢰 의원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례를 보자.

▶관계부처 합동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 사례 분석

국민주거안정 주택공급 확대_표지

정부는 2024년 1월 1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 정책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이벤트의 일환이었다.

국민주거안정 주택공급 확대_국토교통부 보도자료

국토교통부는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신축 소형주택 구입시 취득세 등을 경감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보도자료만 보면 마치 이런 정책들이 당장 시행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국민주거안정 주택공급 확대_세제금융 지원

그런데,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을 자세히 보면, 위 표시처럼 '법개정 전제'라는 단서를 붙여놓은 부분이 많다. 보통 이런 표기는 보일듯 말듯 작은 글씨로 써놓는다. 이 말은 정부에서 발표한 취득세 감면은 법이 개정되어야 시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법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가? 정부가 법을 개정하는 절차는 아래와 같다.

입법계획 수립 → 법령안 입안 → 관계부처 및 당정협의 → 입법예고 →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 법제처 심사 → 국무회의 → 대통령 재가 → 국회 제출

보다시피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수 밖에 없다. 법률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는데 까지만 최소 6개월은 잡아야 한다. 이럴 때 보통 정부는 '청부입법' 찬스를 쓴다.

▶김용판 의원,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발의

김용판 의원 프로필: 출처_대한민국국회 홈페이지

김용판 의원은 2024년 2.20일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향후 2년간 신축 소형주택의 취득세 경감,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임대주택으로 활용 시 취득세 경감,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참여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의 사업장 매입시 취득세 감면 등이다. 이 내용은 앞서 설명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정책(2024년 1.10일 발표)' 내용과 동일하다.

김용판 의원 대표발의_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만약 정부가 직접 관련 절차를 거처 발의했다면 최소 6개월이 걸렸을 법률안이, 정부 발표 후 약 40일만에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제출된 것이다.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 절차는, 그냥 10명 이상 의원의 동의 서명만 받아서 제출하면 끝이다. 이게 정부의 입장에서는 '청부입법'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이유다. 법안발의를 대행한 김용판 의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국회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법안 발의 '건수'를 손쉽게 한 건 늘릴 수 있다. 이것이 청부입법의 생태계가 유지되는 원리다.

▶청부입법은 과연 얼마나 될까?

21대국회 정부 발의 법안처리 현황: 출처_잠자는 국회

21대 국회에서 정부가 직접 발의한 법안은 고작 831건이다. 21대 국회 전체 발의 법안 25,818건의 3.2%다. 487건 처리 법안 기준으로 보면, 전체 처리안건 9,453건의 5.2%에 해당된다. 그런데 공공연한 청부입법의 관행을 고려하면, 실제 발의 및 처리 안건의 상당수가 '청부입법' 방식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부입법이냐 아니냐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공식적으로는 없다. 보통 음지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정부 법령 입법절차: 출처_법제업무편람

▶국회는 정부의 심부름센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입법 주도권은 국회가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의원들이 법률안을 발의해도 만약 그 법안에 대해서 정부가 반대 또는 부정적 입장이면 그 법안은 통과되기가 매우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정부는 자기들이 추진해야 할 법령개정을 청부입법의 방식으로 너무나 손쉽게 해결한다. 국정운영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 정책에 필요한 법 개정사항은 원칙적으로 정부가 발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22대 국회는 원칙적으로 정부의 법안발의 대행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선언하면 좋겠다. 국회가 정부의 '심부름센터'가 되어서는 안된다. 더불어 청부입법 사례의 경우, 해당 의원의 법안 발의 및 처리 실적 평가에서는 원천적으로 제외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