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청역 역주행 참사 두 달째
1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시청역 역주행 참사가 일어난지 두 달이 지났다. 사건 초기에는 대부분 '시청역 급발진' 사고라 불렀는데, 검찰이 급발진이 아닌 운전자 오조작으로 기소함에 따라 지금은 '시청역 역주행' 사고로 불린다. 시청역 역주행 참사 이후 국회에서는 자동차 급발진에 초점을 맞춘 관련 법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어떻게 돼가고 있을까? 사건사고 때마다 발의되는 법안들은 그 시기가 지나면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려면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자동차 '급발진'에 대응하는 국회의 4가지 접근법
시청역 역주행 참사 이후 발의된 법안의 내용을 분류해보면 크게 4가지다. 첫째, 급발진 원인규명과 관련된 입증책임을 다루는 「제조물 책임법」이다, 둘째, 급발진 예방 또는 원인규명과 관련하여 자동차에 설치하는 장치 중심의 「자동차 관리법」이다. 셋째는, 급발진 관련 안전장치 장착 차량에 대해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이고, 마지막으로 넷째는 고령운전자 차량의 급가속 안전장치 설치 비용을 지원해주는 「교통안전법」이다.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
서왕진(2024년 7.17일), 권성동(7.18일), 염태영(8.2일) 의원이 발의했다. 제조물의 결함에 대한 피해자의 입증책임이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완화되었지만, 자동차 급발진 사고처럼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자동차의 경우 결함 추정 요인을 피해자가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결함에 대한 입증책임을 사실상 피해자가 아닌 제조사에 두도록 하는 것이다.
발의 의원 | 핵심 내용 |
서왕진 |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제조업자가 해당 자동차를 공급할 당시 결함이 없었다는 사실 또는 해당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아니하면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
권성동 | 자동차 등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는 영상자료, 기록물 등을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에는 제조물을 공급할 당시 해당 제조물에 결함이 있었고 그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제조업자가 해당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피해자의 손해가 발행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염태영 | 자동차 제조업자가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는 피해자가 손해를 입은 제조물에 결함이 없었다는 사실 또는 해당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여야한다. 피해자가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하였다고추정할 수 있는 영상자료, 기록물 등을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 자동차 제조업자 등은 피해자가 그 손해를 입은 당시에 해당제조물의 결함이 없었다는사실을 입증하여야 손해배상 책임을 면한다. |
표현은 조금씩 다르나 3명 의원의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 내용은 사실상 동일하다. 쉽게 말하면 자동차 결함으로 의심되는 급발진 사고의 입증책임을 피해자가 아닌 제조업자가 지게 하는 것이다. 다만, 피해자는 결함을 추정할 수 있는 사고 당시의 영상자료나 기록물을 제출해야 한다. 아마도 자동차 제조 회사들의 상당한 반대와 저항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 「제조물 책임법」 의 제정 취지와 개정 경과
☞ 「제조물 책임법」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소비자에게 생명‧신체·재산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 제조업자의 고의‧과실 여부에 상관없이 그 손해배상 책임을 규정함으로써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제정되었다.
☞ 이 법 제정 당시에는 입증책임에 관하여 아무 규정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피해자가 ①제조물에 결함이 존재하였다는 사실, ②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 ③결함과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 그러나 일반 소비자인 피해자가 결함의 존재, 결함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을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2017년에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개정되었다. 그 결과 피해자가 결함·손해의 존재 및 인과관계를 직접 입증하는 대신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 등 간접사실의 입증만으로 ‘결함으로 인한 손해 발생’이 입증된 것으로 추정하도록 하였다.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
현행 자동차 관리법은 급발진 등 각종 자동차 사고의 원인 규명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사고 전후 자동차의 운행정보를 저장하는 사고기록 장치의 설치를 의무화했다.(2024년 2월 개정, 2025년 2월 시행) 그런데 이 장치로는 급발진 여부를 판단하는데 한계가 있어, 보다 확실한 근거자료 수집을 위해 페달영상 기록장치(블랙박스)를 설치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나아가 페달 오조작 예방장치 설치 법안도 있는데, 이러한 장치 설치 중심의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은 이헌승(2024년 7.8일), 이양수(7.17일), 염태영(8.2일), 김미애(8.29일) 의원이 발의했다.
현행법 | 이헌승(안) | 이양수(안) | 염태영(안) | 김미애(안) |
사고기록 장치 | 사고기록 장치 | 사고기록 장치 | 사고기록 장치 | 사고기록 장치 |
- | 페달영상 기록장치 | 페달영상 기록장치 | 페달영상 기록장치 | 페달영상 기록장치 |
- | - | - | 페달오조작 방지장치 | - |
의무 | 의무 | 의무 | 의무 | 권고(65세 이상 장착시 비용일부 지원) |
참고로, “페달영상 기록장치”란 보통 페달 블랙박스라고 하는데, 자동차의 가속과 제동을 제어하는 페달의 조작정보를 영상으로 저장하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말하며, “페달오조작 방지장치”란 자동차 전방과 후방의 장애물을 감지하고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잘못 조작하여 충돌이 예상되는 경우 제동장치를 작동시켜 충돌을 억제하며 경고음 등으로 운전자에게 위험을 인지시키는 장치를 의미한다.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 개정안
윤종군 의원이 발의(7.16일)한 이 법안의 핵심내용은 페달영상 기록장치 등 사고원인 파악을 위한 기록장치를 자동차 보험료 할인은 권고할 수 있는 장치의 유형으로 추가하는 것이다.
▶교통안전법 개정안
한지아 의원이 발의(7.5일)한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65세 이상의 고령운전자가 자동차 사고예방에 효과적인 자동차 급가속 억제장치를 장착하거나, 장착된 자동차를 구매하는 경우 그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충격이 가시면, 법안도 잊혀진다
자동차 사고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은 처음 발의된 것일까? 아니다.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되었다가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사회적으로 충격이 큰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관련 법안이 경쟁적으로 발의되지만, 그 충격이 조금 가실때 쯤이면 발의된 법안도 슬며시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만이 국회의원의 '발의'를 위한 '발의'의 나쁜 관행을 끊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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