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금자보호법, 대부업법, 건축법,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법, 군인·공무원 재해보상법, 위기청년 지원 특별법
여야 정책위의장(김상훈, 진성준)이 민생법안이라고 '주장하는' 6개의 법안에 대해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주장하는'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게 과연 '민생법안'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예금자 보호법, 대부업법, 건축법,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법, 군인·공무원 재해보상법, 위기청년 지원 특별법 이상 6개의 법안인데, 어떤 내용인지 간략히 살펴본다.
▣ 민주당 제안 민생법안
민주당이 합의처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민생법안은 예금자보호법, 대부업법, 건축법 개정안이다.
▶예금자보호법 개정안
예금보호 한도를 기존 5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리는 것이다. 엄태영, 신영대, 정준호, 김한규, 주호영 의원이 발의했다. 예금 보호한도가 5천만원으로 정해진 2001년 이후 국내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만큼 예금 안정성을 위해 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은행의 경우 5천만원 이하 예금자 비중이 98%인데, 이게 과연 '민생법안'인지 다소 의문이다. 고액예금자가 혜택을 받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한도 상향으로 예금보험료율이 인상되면 그 부담은 모든 예금자가 나누어 져야 한다.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대부업 등록(시도지사) 시 자기자본(순자산액) 요건을 현행 1천만원(개인)에서 1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것이다. 대부업 등록 요건이 너무 허술하여 영세 대부업자가 난립하고, 인권유린에 가까운 불법추심을 자행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등록 요건을 강화하여 사실상 무자격 대부업체의 난립을 막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한정애, 조정식, 김태선, 강민국, 최형두, 천준호, 정태호, 박성준 의원이 발의했다. 물론 필요한 법안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부업자에 의존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이 진짜 '민생법안' 아닐까?
▶건축법 개정안
건축주가 건물을 지을 때 '기초' 또는 '주요구조부'를 변경하려면 구조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라는 법안이다. 여기서 '주요 구조부'라 함은 건축물의 기둥이나 내력벽을 말한다. 현행법에서는 '기초' 변경은 경미한 사안으로 별도의 변경절차가 없고, '주요 구조부' 변경은 사용승인 신청 시 일괄 신고하면 된다.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여 ‘기초’ 또는 ‘주요구조부’를 변경하려는 경우 건축물의 구조안전을 증빙하는 서류 제출을 의무화 하는 법안이다. 황명선, 홍기원 의원이 발의했다. 그간의 입법공백을 보완하는 법안인데, 이를 '민생법안'이라고 하기에는 좀 억지스럽다.
▣ 국민의힘 제안 민생법안
국민의힘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민생법안은 군인·공무원 재해보상법 개정안과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위기청년 지원 특별법 제정안이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
전력이 있어도 이를 수송할 전력망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용인에 조성 중이고 수도권 곳곳에 데이터센터가 입주하면서 막대한 추가 전력수요 예상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기를 끌어올 수 있는 대규모의 전력망 확충이 필요하다. 이 특별법은 전력망 구축을 위해 ①범부처 차원의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위원회 신설, ② 행정절차 소요 기간 단축을 위한 인·허가 의제 및 영향평가 특례 적용 ③차별화된 보상·지원 대책 등을 담고 있다. 참고로 참고로 전력 생산량의 60%가 충남·경북·전남에 집중된 반면, 소비량은 단연 서울·경기가 압도적이다. 서울의 전력 자급량은 10% 수준이다. 또한 전기 먹는 하마라고 불리는 데이터센터의 72%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수요는 10GW로 예상된다. 이 법안은 사실상 '민생법안' 보다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 지원 법안' 성격이 강하다.
민주당의 김원이, 이상식, 정진욱, 김정호, 김한규, 추미애, 이언주 국민의힘 소속 김석기, 이인선, 김성원 의원이 발의했다. 이언주 의원은 여야 협상이 이루어진 하루 전에 법안 발의에 합류했는데, 이런 경우 보통 법안발의 및 처리 건수를 늘리기 위한 '끼워넣기' 수법으로 보면 된다.
▶공무원·군인 재해보상법 개정안
공무수행 중 순직한 소방ㆍ경찰 등 공무원은 소관 법률에 따라 특별승진할 수 있다. 그런데 사망자의 유족에게 지급되는 연금이나 조위금 등은 '사망 당시 계급'을 기준으로 지급하고 있다. 군인도 마찬가지다. 전사자와 순직자의 공적이 인정될 경우 1계급 진급할 수 있는데, 연금이나 수당은 사망 당시 계급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순직자에 대한 연금 등을 지급할 경우 '사망 후 추서'된 계급에 맞추어 연금 등을 지급하자는 법안이다.
공무원 재해보상법 개정안은 박대출, 유용원, 김상욱, 강선영, 권향엽 의원이 발의했다. 군인 재해보상법 개정안은 한기호 의원이 발의했다. 순직자에 대한 예우를 합리적으로 바로잡는 법안은 맞는데, 이걸 '민생법안'이라고 할 수 있나?
▶위기청년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가족돌봄을 위해 자신의 학업, 취업, 근로활동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 고립·은둔청년 등 위기에 처한 청년 지원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명시하고 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법안이다. 위기청년 전담 지원체계 구축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이 정상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기존의 위기청년 지원정책에 대해 법률체계를 정비하는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민생법안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긴다.
▣ 국회가 생각하는 '민생'의 기준
우리는 보통 '민생'을 먹고 사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민생법안'이라고 하면 뭔가 먹고 사는 문제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법안이라고 기대한다. 여야가 민생법안이라고 주장하는 6개의 법안은 모두 필요한 법안이고 타당한 법안이다. 그러나 과연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민생법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국회가 생각하는 민생의 기준은 아무래도 우리 서민들이 생각하는 기준과는 좀 다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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