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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글로벌 간첩 처벌법' 사례로 본 부실법안의 특징

by 레몬컴퍼니 2024. 8. 8.

▣ 형법 개정안(주호영, 장경태, 위성락, 박선원, 인요한, 강유정)

한동훈 대표가 촉발시킨 간첩법(형법 상 간첩죄) 이슈로 이와 관련된 법률 개정안이 줄줄이 발의될 것은 예상했지만, '글로벌 간첩 처벌법'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강유정 의원의 「형법」 개정안은 부실법안의 전형적 특징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간첩죄 관련 형법 개정안 발의 현황

발의 일자 발의 의원 주요 내용
6월 21일 주호영 ⊙외국, 외국인, 외국인단체를 위하여 간첩한 자를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함
7월 4일 장경태 ⊙외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외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함
⊙국가핵심기술을 적국, 외국에 유출한 경우도 간첩죄를 적용함
7월 22일 위성락 ⊙형법(간첩죄)의 ‘적국’ 개념을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로 변경
7월 23일 박선원 형법 제98조(간첩)을 제98조(적국을 위한 간첩)과 제98조의2(외국 등을 위한 간첩)으로 구분
⊙간첩 행위를 국가기밀의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행위로 규정
⊙국내·외 정책 관련 사항 또는 외교적 관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공무원 등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간첩죄에 포함
7월 31일 인요한 ⊙간첩죄의 범위를 기존 적국에서 외국 및 외국인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포함 
간첩 행위를 국가기밀의 탐지·수집·보관·누설·전달·중개행위로 규정
⊙산업상 기밀(국가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 유출도 간첩죄에 포함
8월 1일 강유정 <별도검토>

한동훈의 '간첩법' 관련 논란이 불거진 날이 7월 30이다. 관련법 개정안은 논란 이전에 4건(민주3, 국힘1)이 발의되어 있었고, 논란 이후에 2건(국힘1, 민주1)이 발의되었다. 발의 법안의 형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은 유사하다. 간첩죄의 적용 대상을 현행법처럼 적국에 국한하지 않고 외국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산업기밀 및 국가핵심기술의 유출도 간첩죄에 포함하는 법안도 있다. 박선원 의원의 법안이 좀 특이한데, 여기에는 '정책 또는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공무원을 이용하는 행위'도 간첩죄에 포함시켰다.

형법(간첩죄) 개정안 발의 현황

▣ 강유정 의원, '글로벌 간첩 처벌법'

지난 8월 1일, 일부 언론을 통해 강유정 의원이 '글로벌 간첩 처벌법'을 발의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글로벌 간첩 처벌법이라고? 좀 생소한 용어인데, 이 이름은 강유정 의원이 보도자료를 통해 스스로 붙인 명칭이다.

강유정 의원_보도자료_형법_글로벌 간첩 처벌법

강유정 의원의 형법 개정안은 본질적으로는 앞서 발의된 5건의 형법 개정안과 유사하다. 따라서 사실 보도가치는 크게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다수 언론에 보도가 된 것은 '글로벌 간첩 처벌법'이라는 이색적인 명칭 덕분으로 보인다. 보도자료의 승리다.

▶ 내란죄와 외환죄

강유정 의원의 형법 개정안은 형법 제2편 제2장 「외환의 죄」와 관련된 것인데, 본론에 앞서 내란죄와 외환죄의 개념 정도만 먼저 살펴보고 간다. 내란죄는 형법 제87조(내란)에서 "대한민국 영토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죄"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 내부에서 국가의 기본적 질서를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내란죄, 외환죄

외환죄는 국가 존립에 군사상의 위협을 가하는 죄인데, 형법 제2편 제2장에서 규정한 외환죄는 외환유치(외국과 공모하여 전쟁을 시작하게 하거나 대한민국에 항적_to resist the enemy_한 죄), 여적(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 이적죄가 있다. 이적이란 '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인데 형법에서는 모병이적(군사모집), 시설제공 이적, 시설파괴 이적, 물건제공 이적, 일반이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문제의 제98조 간첩죄도 같은 선상에서 외환죄로 분류되는 것이다.

▣ 강유정 「형법」 개정안 분석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개정 법률안의 형식은 표지부, 본문부, 신구조문대비표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부의 제안이유와 주요내용은 통상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으로 함께 작성하기도 한다.

국회의원 발의 법안 양식_표지부
국회의원 법안 발의 양식_본문부
국회의원 법안 발의 양식_조문대비표

1)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

강유정 의원은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을 다음과 같이 작성했다. 혹시라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핵심 문장을 그대로 옮긴다.

"국가안보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 등으로 확대하고 안보위협 행위를 간첩 뿐만 아니라 외국 등의 부당한 개입을 차단하기 위하여 법적으로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실제 개정 조문을 보지 않더라도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만으로 법안의 발의 취지와 주요내용을 알 수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 법안의 경우 제안이유만 가지고는 왜 법안을 발의했는지 알기 어렵다.

강유정 의원 프로필_출처: 대한민국 국회 홈페이지

2) 본문부 및 조문대비표

강유정 의원 발의 형법 개정안의 <본문부>와 <조문대비표>의 내용을 토대로 조문별로 검토해본다.

현행법 제98조(간첩) ①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강유정(안) 제98조(적국에 의한 안보위협) ① 적국을 위하여 국가기밀을 수집 · 탐지 · 누설 · 전달 · 중개(이하 “간첩”이라 한다)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98조의 (괄호제목)을 '간첩'에서 '적국에 의한 안보위협'으로 바꾼 이유는 뒤에 나오는 제98조의2(외국 등에 의한 안보위협)와 구분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간첩죄' 대신 '안보위협죄'가 된다. ①항에서 간첩 행위를 수집·탐지 등으로 구체화 한 것은 7.23일 박선원(안)과 동일하다.

현행법 제98조(간첩) ② 군사상의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강유정(안) 제98조(적국에 의한 안보위협) ② <삭제>

강유정(안)에서는 현행 군사기밀 누설 처벌조항이 삭제되었다. 아마도 ①항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삭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행법 제98조(간첩) ③, ④ <없음>
강유정(안) 제98조(적국에 의한 안보위협) ③ 적국 소속이거나 적국으로 금품 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정보를 왜곡ㆍ조작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 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④ 적국 소속이거나 적국으로 금품 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국내외 정책과 관련 사항 또는 외교적 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자는 제3항의 형과 같다.

강유정 개정안 ③항과 ④항은 신설 조항인데, 적국에 매수되어 정보를 왜곡·조작, 허위사실 유포, (정책 및 외교 관련) 부당 영향력 행사에 대해 '안보위협죄'로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어떤 행위를 말하는지 과도하게 추상적이고, 형량이 동일한데 굳이 ③항과 ④항으로 구분한 이유도 모르겠다.

현행법 <없음> ① <없음>
강유정(안) 제98조2(외국 등에 의한 안보위협) ①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를 위하여 간첩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강유정(안)의 제98조2(외국 등에 의한 안보위협)은 제98조(적국에 의한 안보위협)과 구분하는 개념인데, 이는 7.23일 박선원(안)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선원은 형법 제98조(간첩)을 제98조(적국을 위한 간첩)과 제98조의2(외국 등을 위한 간첩)으로 구분했다.

현행법 <없음> ②, ③ <없음>
강유정(안) 제98조2(외국 등에 의한 안보위협) ②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이하 “외국등”으로 한다)에 소속되거나 외국등으로부터 금품 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정보를 왜곡ㆍ조작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 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③ 외국등에 소속되거나 외국등으로부터 금품 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국내외 정책과 관련 사항 또는 외교적 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자는 제2항의 형과 같다.

"외국등"의 단축표현을 쓰려면, 이 말이 처음 나오는 ①항에 두는 것이 맞다. 여기에서의 ②항과 ③항도 형량이 같으므로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어보인다. 그리고 강유정 의원은 "대가를 받고" 하는 위 행위들에 대해 안보위협죄로 처벌한다고 했는데, 그럼 "대가를 받지 않고 하는" 행위는 범죄로 성립되지 않는가?

현행법 제102조(준적국) 제93조 내지 전조의 죄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에 적대하는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는 적국으로 간주한다.
강유정(안) 제102조(준적국) ① 제93조 내지 전조의 죄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에 적대하는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는 적국으로 간주한다.

준적국은 적국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으로 현행법과 동일하다.

현행법 제102조(준적국) ② <없음>
강유정(안) 제102조(준적국) ② 제1항에 대하여 제98조의2의 죄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강유정(안)은 준적국에 대해서는 98조의2(외국 등에 의한 안보위협)의 죄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미 ①항에 준적국은 적국으로 간주한다고 했기때문에 굳이 ②항은 필요가 없어 보인다.

현행법 제104조(동맹국) 본장의 규정은 동맹국에 대한 행위에 적용한다.
강유정(안) 제104조(동맹국) ① 본장의 규정은 동맹국에 대한 행위에 적용한다.

동맹국에 대한 항적_to resist the enemy_행위는 대한민국에 대한 항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현행법과 동일하다.

현행법 제104조(동맹국) ② <없음>
강유정(안) 제104조(동맹국) ② 제1항에 대하여 제98조의2의 죄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동맹국에 대해서는 제98조2(외국 등에 의한 안보위협)의 죄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동맹국의 정보 왜곡·조작, 허위사실 유포, (정책 및 외교 관련) 부당 영향력 행사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동맹국이라서? 이 법안의 전체적인 취지가 적대관계와 무관하게 간첩 행위를 처벌한다는 것인데, 앞뒤가 안맞는 느낌이다.

▣ 강유정 발의 형법 개정안_부실법안 대표사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강유정 의원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부실법안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1) 비문이 너무 많다

국어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 너무 많다. 서두에 언급했지만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을 보통의 국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조문에도 비문이 많다.

2) 유행을 타는 법안이다

부실입법의 경우 특정 사안이 벌어졌을 때 이에 편승하여 내는 법안이 많은데, 강유정 법안은 한동훈 간첩 이슈에 편승하여 발의한 법안이다. 이미 유사법안이 5건이나 발의되어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3) 핵심 컨셉은 선행 발의 법안의 개념을 차용했다

강유정(안)의 특징이라면 현행법 제98조(간첩)를 '적국에 의한 안보위협(제98조)'과 '외국에 의한 안보위협(제98조의2)'으로 구분한 것인데, 이는 7.23일 발의한 박선원(안)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4)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모호하다

박선원(안)에서 "국내·외 정책 관련 사항 또는 외교적 관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공무원 등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간첩죄에 포함"시켰다. 강유정(안)은 비슷한 키워드로 조문을 만들었는데, 차이가 있다면 더 모호하다.

5) 법률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강유정(안) 조항의 내용이나 구분이 법률체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인지 의심스럽다. 특히 102조(준적국), 104조(동맹국) 부분이 그러하다.

6) 국회 법제실의 법률안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국회 법제실은 국회의원의 법제활동을 지원하는 부서다. 법제실은 국회의원이 요청한 법률안을 검토하고 입안하는데, 국회의원 입장에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는 아니다. 법제실 검토는 어느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발빠르게 발의해야 하는 '부실법안'의 경우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법안'보다는 '보도자료'의 승리

강유정_글로벌 간첩 처벌법_보도 현황

조금 과장을 보태 말한다면, 강유정 의원의 형법 개정안은 '법안'보다는 '보도자료'에 더 공을 많이 들인 것처럼 보인다. 특히, '글로벌 간첩 처벌법'이라는 자극적인 '신조어'를 만드는데 가장 많은 신경을 쓴 것 같다. 이번 기회에 국회의원의 보도자료를 여과없이 그대로 기사화하는 일부 언론의 관행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