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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반의사불벌죄와 친고죄

by 레몬컴퍼니 2024. 10. 8.

▣ 「형법」 개정안(전현희)

고발사주. 남을 부추겨 누군가를 고발하게 시킨다는 의미다. 최근 대통령실 전 행전관이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의혹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정치적, 사회적 목적으로 명예훼손죄 고발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명예훼손죄를 '반의사불벌죄'에서 '친고죄'로 바꾸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참고로 친고죄 전환에 대해서는 이재명·조국 대표가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명예훼손죄_반의사불벌죄_친고죄

▶형법 제33장 명예에 관한 죄

형법 제33장에서는 제307조(명예훼손), 제308조(사자의 명예훼손), 제309조(출판물등에 의한 명예훼손), 제311조(모욕)에 대해 각각 처벌 대상과 법정형을 정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구분 근거규정 처벌대상 법정형
명예훼손 사실적시 형법
제307조①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 ㆍ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ㆍ500만원 이하 벌금
허위사실적시 형법
제307조②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 ㆍ5년 이하 징역
ㆍ10년 이하 자격정지
ㆍ1천만원 이하 벌금
사자의 명예훼손 사실적시 처벌대상이 아님
허위사실적시 형법
제308조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 ㆍ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ㆍ500만원 이하 벌금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사실적시 형법
제309조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에 의하여 (사실적시)명예훼손죄를 범한 자 ㆍ3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ㆍ700만원 이하 벌금
허위사실적시 형법
제309조②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에 의하여 (허위사실 적시)명예훼손죄를 범한 자 ㆍ7년 이하 징역
ㆍ10년 이하 자격정지
ㆍ1,500만원 이하 벌금
모욕 - 형법
제311조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 ㆍ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ㆍ200만원 이하 벌금

▶반의사불벌죄 VS. 친고죄

'친고죄'는 범죄의 피해자나 고소권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 제기를 할 수 있는 범죄다. 반면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와 소추를 할 수 있다. 다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한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 (그 의사에 반하여) 형사소추를 할 수 없다. 형법 상 명예훼손죄의 경우 제308조(사자의 명예훼손)과 제311조(모욕)는 친고죄고, 제307조(명예훼손)과 제309조(출판물등에 의한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된다.

▶전현희, 모든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전현희 의원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형법 제33장(명예에 관한 죄)의 모든 명예훼손 범죄를 친고죄로 전환하자는 내용이다. 개정안대로라면 현행법 상 반의사불벌죄인 제307조(명예훼손)과 제309조(출판물등에 의한 명예훼손)도 친고죄로 되어 범죄 피해자 등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참고로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전환하자는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최강욱 의원(2021년 3월 4일)박주민 의원(2021년 8월 13일)이 발의한 바 있으나 임기만료에 따라 폐기되었다. 전현희 의원 발의 「형법」 개정안의 신구 조문대비표는 <아래>와 같다.

전현희_형법 개정안_신구조문대비표

▶반의사불벌죄는 '악'이고, 친고죄는 '선'인가?

'친고죄'로 규정하는 것은 국가 형벌권의 개입을 가능한 제한한다는 뜻이고, '반의사불벌죄'로 정하는 것은 피해자 의사를 존중하지만 범죄의 심각성과 사회적 해악성을 고려해 국가의 개입을 강화한다는 의미다. 전현희 의원의 「형법」 개정안 맥락을 보면 반의사불벌죄로 인해 고발이 남발되고, 심지어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례까지 이어지는 '악의 근원'으로 비쳐지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관련하여 2021년 4월, 헌법재판소의 선고 내용을 보면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헌법재판소 선고 2021. 4. 29>
친고죄의 범위를 넓게 설정하면 고소가 있어야 수사 및 형사소추가 개시될 것이므로 피해자의 의사를 폭넓게 존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피해자가 범죄자의 보복 또는 사회적 평판이 두려워 고소를 하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는 반면, 반의사불벌죄의 범위를 넓게 설정하면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수사 및 형사소추가 개시되어 범죄자의 손해배상과 합의를 촉진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비교적 경미한 범죄에 대해서도 고소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 개시됨으로써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으므로, 어느 한쪽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반드시 합리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움.

한편, 반의사불벌죄는 진행중인 수사의 실질적 종결권을 피해자에게 부여하여,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나 당사자 간 분쟁해결을 촉진하는 효과도 있는데, 친고죄로 전환하는 경우 이러한 취지가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 '정치인' 아닌 '시민'의 시각에서 판단을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사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모든 명예훼손 범죄를 친고죄로 전환한다면? 명예훼손은 정치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연예인이나 공인 등 일반인도 명예훼손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명예를 침해받은 일반 시민이 직접 고소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면? 친고죄 전환에 따라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발생한다면?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의 균형을 찾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이런 문제를 정치인의 시각과 입장에서, 정치인에게 편리한 대로만 다루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