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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발의

영남산불 피해구제 특별법 발의 경쟁

by 레몬컴퍼니 2025. 4. 24.

지난 3월 말 영남권의 대형산불이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워낙 피해가 크다보니 피해지역에 대한 신속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특별법(안)이 발의돼고 있다. 현재 4건의 특별법 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그런데 이런 특별법은 피해지역 여야 의원이 합심하여 함께 발의하면 안되는 것인가? 왜 굳이 비슷비슷한 법안을 따로 따로 발의하는 것일까?

영남산불 피해구제 특별법 발의경쟁

▣ 영남권 대형산불이 남긴 피해

2025년 3월 21일부터 시작된 영남권의 대형 산불로 경남 산청, 경북 의성, 울산 울주,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약 4만 8000ha의 산림이 소실됐다. 31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도 44명에 이른다. 이재민 1,997세대 3,307명이 대피했다. 주택 4,015곳, 농축산시설 1,914곳, 사찰 7곳, 기타 986곳 등 모두 6,922곳이 파손됐다. 국가문화유산 30여건이 피해를 입었다.

▣영남권 대형산불 피해구제 특별법

영남권 대형산불 피해지역의 지원을 위해 발의된 특별법(안)은 현재 4건이다. 김태선(민주당 / 울산 동구), 박형수(국민의힘 / 경북 의성군 청송군 영덕군 울진군), 임미애(민주당 / 비례 / 경북도당위원장), 이만희(국민의힘 / 경북 영천시 청도군)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처음 발의한 김태선 의원 법안을 기준으로 특별법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영남산불 특별법 발의 의원_김태선 박형수 임미애 이만희

  • 대형산불 피해지역의 안정과 회복을 위한 신체적ㆍ정신적ㆍ재산상의 피해구제와 생활 및 심리안정 지원이 목적이다.
  • 국가 등은 피해자 및 피해지역의 회복과 안정을 위한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ㆍ시행해야 하고, 지원에 수반되는 예산상 조치를 해야 한다.
  • 배상 및 보상 등을 심의ㆍ의결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별도 위원회를 둔다.
  • 손해배상금, 위로지원금을 지급한다.
  • 구조, 복구, 수습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의 손실을 보상한다.
  • 국가는 피해지역의 경제 회복 및 활성화를 위해 특별지원방안을 시행한다.
  • 피해자에게 주거지원금, 생활지원금, 의료지원금을 지급한다.
  • 주택복구를 위한 복구비의 국고 지원 부담률을 70% 이상으로 한다.
  •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사업장 건축물ㆍ시설물 등의 재산 피해 복구 비용을 지원한다.
  • 사업주는 피해자(근로자)가 치유휴직을 신청할 경우 허용해야 한다.

주로 피해 복구 비용 지원, 각종 지원금 지급이 핵심 내용이다. 김태선 의원 외 다른 의원의 특별법(안)을 구체적으로 비교해 보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비슷한 내용일 것으로 짐작된다.

▣ 특별법, 여야 의원 함께 발의할 수 없나?

이런 종류의 특별법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은 왜 비슷비슷한 법안을 굳이 따로따로 발의하는가이다.

영남권 대형산불 피해구제 특별법 발의 현황

피해지역의 여야 의원들이 함께 고민해서 함께 발의하면 훨씬 더 효과적일텐데 말이다. 실제로 여야 의원이 함께 발의한 법안은 처리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공동발의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한가?

국회법 상 여야 의원의 공동발의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한가? 아니다. 가능하다.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하는 법안의 종류는 세가지다. 1인발의 법안, 대표발의 법안, 공동대표발의 법안이 있다. 이 중 공동대표발의 형식을 이용하면 여야 의원이 공동으로 대표발의 할 수 있다. 다만 대표발의 의원 숫자에는 제약이 있다. 그러나 꼭 대표발의 의원으로 이름을 올릴 필요는 없다.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원은 공동발의자로 참여하면 된다.

구분 대표발의 의원 공동발의 의원 찬성 의원 사례
1인발의 법안 1명 없음 9명 이상 2024년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이재명의원  170인)
대표발의 법안 1명 대표발의+공동발의(필수)+찬성(선택) 합 10명 이상 ※ 국회의원 발의 법안 대부분에 해당
공동대표발의 법안 2명~3명 대표발의+공동발의 or 찬성 합 10명 이상 은퇴자마을 조성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맹성규의원ㆍ이양수의원 등 10인)

▶공동 대표발의 사례

여야 의원이 공동대표발의 형식으로 발의한 사례도 많다. 예를 들면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안'의 경우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과 민주당 전재수 의원이 공동으로 발의했다. '남해안권 발전 특별법안'은 문금주 의원과 정점식 의원이 공동으로 대표발의했다. 유료도로 이용자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고자 하는 '유료도로법 개정안'은 민주당 김교흥 의원과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이 함께 발의했다. 이런 사례처럼 비록 소속 정당은 달라도 지역 현안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고자 할 때 공동대표발의 형식을 이용한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 영남산불 특별법도 여야 공동발의가 필요했다

특별법 제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피해지역 여야 의원이 합심해서 발의하고, 처리를 위해 함께 노력하면 제정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진다. 이번 특별법의 특성상 함께 발의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왜 따로따로 발의했을까? 두 가지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먼저 발의했다는 정치적 홍보 때문에

특별법을 먼저 발의한 정당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피해주민의 지원을 위해 특별법도 발의했다. 그런데 저 당은 그런 것도 안한다. 누가 진짜 민생을 챙기는 정당이냐?" 이런 식이다. 법안 발의 자체를 정치적 홍보용 또는 상대당 비난용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작동한다. 졸렬한 행위다.

▶여야 협치문화의 실종 때문에

지금 우리 정치, 우리 국회는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여야가 힘을 모아 함께 무엇을 한다는 문화 자체가 없다. 그냥 나는 나고, 너는 너다. 협치를 하면 좀 더 효과적일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전혀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

▣ 특별법은 통과될 수 있을까?

2025년 4월 24일 오늘, 국회에서 산불피해지원대책 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 특위까지 만들어졌고, 여야 의원이 모두 특별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에 당연히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알 수 없는 일이다.

2025년 4월 24일_국회 산불피해지원대책 특별위원회

국회와 정부는 특별법을 만드는 것 자체에 굉장히 인색하다. 지원을 한다 하더라도 기존의 법과 제도에 따라 하고싶어 하지, 특별법을 만들어 하는 방식을 꺼린다. 왜냐? 특정 지역의 재난에 대해 특별법을 만들면 다른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유사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지역간·재난간 복구지원의 일관성과 형평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참고로, 2019년 4월에 강원도 고성·속초, 강릉·동해, 인제 지역의 대규모 산불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 때 '강원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발의됐는데, 어떻게 되었을까? 제대로 논의한번 하지 못하고 폐기됐다.